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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Dharmaniac 2016. 2. 18. 18:56

호모 사피엔스가 수렵 채집인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 사실상 '지구의 지배자'가 되기까지의 인류 역사를, 아주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흥미진진하게 서술하는 책이다. 가 역사를 돌아보면서 하는 거시사가(巨視史家)적인 해석과 세계관 모두가 무척 흥미롭다


책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 있지만, 몇 가지 기억에 남는 포인트만 적어보고 싶다. 


첫 번째, 저자가 짚어낸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로서 성공한 비결이다. 무척 설득력이 있게 느껴졌다. 그는 인류의 '협업 방식'이 다른 생물과 차별화되어 있는 것을 성공의 비결로 보고 있다. 그리고 차별화가 가능했던 원인을 인류만이 가진 고유의 '상상력'으로 보고 있다. 


인류의 협업 방식에서는, 2가지 특징이 발견이 되는데 이 2가지 특징을 동시에 보유한 것은 인류외에는 없는 것 같다. 협업의 유연함, 그리고 협업이 대규모로 가능하다는 점이다. 세상에 벌어지는 온갖 새로운 상황에 부딪혀도 유연하게 해결방법을 무리가 같이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 무리의 규모가 어떤 생물보다도 크다는 것이다. 늑대의 떼는 유연성은 좀 있어도 규모는 인간만큼은 어렵다. 벌떼의 규모는 커도 유연성은 없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인간의 의사소통에서 발견이 되는데, 인간은(인간의 언어는), 다른 생물처럼 단순 묘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를 창조해내고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어서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예들을 들어보자. 

'인권'이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인간이 여러가지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믿게 된 것 아닌가? 

'종교'는 또 어떤가? 종교의 교리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같은 스토리를 믿는 건가?

'기업'은 어떤가? '국가'는 어떤가? '돈'은 어떤가? 

이것들 모두 객관적 실체는 없이('산'과 같이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의 픽션을 다수가 믿고 행동함으로써 생성이 된 것들 아닌가? 


비슷한 내용들을 어디서 본적이 있는 것도 같지만, 저자가 전개하는 논리는 간결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이런 픽션들을 다수가 믿음으로써 인류는 객관적인 세계 위에 자신만의 허구의 세계를 만들었고, 그 허구의 세계가 이제는 객관적 세계를 압도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가? 설득력 있지 않은가?


두 번째, 저자의 역사관이 열려 있다는 점이다. 책의 여러 곳에 걸쳐서 이야기하듯이, 저자는 어떤 역사의 결정론을 믿지 않는다. 그는 이 '인류의 역사'에 대한 책을 쓰고 자신의 이론을 주장하면서도 시종 유연한 연역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어찌 바로 전에 읽은 책이 연역법적 접근을 주장했던 칼 포퍼에 대한 책이여서인지 그런 점들이 계속 보였던 것 같다.) 그는 어떤 역사적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 아마도 자신이 이 책에서 정리한 프레임에 누군가가 챌린지를 해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사람으로 보인다. 


'역사의 결정론'에 대한 그의 의견을 보자.

<역사는 결정론으로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도 없다. 역사는 카오스적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들 간의 상호작용은 너무 복잡하므로, 힘의 크기나 상호작용 방식이 극히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에는 막대한 차이가 생긴다.>(p340)


하면서 저자가 설명하는 '2단계level two 카오스계'부분은 이번에 새로 배운 용어이다. 그동안 다른 이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도 말하고 싶었던 내용이 바로 이 '2단계 카오스'이론인 것 같다. 일종의 'self-serving prophecy (어떤 말을 앞에 해버리는 바람에 행동도 그렇게 하게 되는 심리)'라는 심리학 용어와도 비슷하고.

<역사는 이른바 '2단계' 카오스계다. 카오스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1단계 카오스는 자신에 대한 예언에 반응을 하지 않는 카오스다. 가령 날씨는 1단계 카오스계다. 날씨는 무수히 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지만,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요인을 고려하는 컴퓨터 모델을 만들어 점점 더 정확하게 예보할 수 있다. 

2단계 카오스는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다. 그러므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시장이 그런 예다. 만일 우리가 석유 가격을 1백 퍼센트 정확히 예측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석유 가격은 즉각 반응할 것이고, 해당 예측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정치도 2단계 카오스계다. 소련 연구가들은 1989년 혁명을 예측하지 못했고, 중동 전문가들은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을 예측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비난하고 혹평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런 비난은 공정하지 못하다. 혁명은 그 정의상 예측이 불가능하다. 예상 가능한 혁명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p340-341)


이어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에 대해 그의 말을 빌려 와 본다. 

<물리학이나 경제학과는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가령 유럽인이 어떻게 아프리카인을 지배하게 되었을까를 연구하면, 인종의 계층은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며 세계는 달리 배열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p342)

나는 이 대목은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함에도, 잘못 이해를 하면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세계는 달리 배열될 수도 있었다'라는 대목은 잘못하면 '사회공학적 실험'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서, 포인트를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에 둬야 할 것 같다. 책에서 느낀 저자의 사고방식으로는 그런 '사회공학적 실험'과 같은 것은 절대 찬성하지 않을 것 같다.


위의 두 가지 정도가 무척 신선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던 점들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아쉬웠던 부분도 있다. 

하나만 짚어보자. 그가 '자본주의'가 허구의 스토리에 기반했다는 주장은 수긍이 가지만, 그외 그가 묘사하는 그의 시각은 편견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그가 경제학자가 아니다 보니, 자유시장에 대해서는 잘못 알고 있는 점들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자기 이익 추구'라는 가치 중립적인 용어 대산 '탐욕과 이기심'으로 나쁘게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가 어렵다. 시장에서 '강제성'이 없는 것을 마치 다른 선택이 없는 '강제성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도 곤란하다. 오히려 '국가'가 시장에서 해야할 역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오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제국주의'를 싫어하는 이들이 읽게 되면 반감을 가질 대목들도 제법 있었던 것 같은데, 그에 대해서는 직접 읽어보고 반론을 펴보시기를 바란다. 


다른 생각을 한번 해본다. 그의 세계관을 가지고 '인류'라는 게임('문명'이라는 게임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더 많은 '우연'의 요소들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른 역사까지 넣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읽으면서 시종일관 즐거운 지적 여행이었던 것 같다. 추천하고 싶다. 

아, 저자 유발 하라리 박사의 신간이 또 있다고 하는데 아직 번역중이라고 하는 것 같다. 기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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