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just here

[책] "칼 포퍼" - 필 파빈 본문

책책책

[책] "칼 포퍼" - 필 파빈

Dharmaniac 2016. 2. 15. 20:55

이 책은 철학자 칼 포퍼(1902-1994)에 대한 책이다. 그의 일생과 사상에 대해서 200페이지 정도에 걸쳐 다뤘다. 

내가 칼 포퍼에 대해서 흥미를 갖게 된 것은 2가지 이유에서였다. 우선 그가 당시 철학계를 주름잡고 있던 비트겐슈타인과 맞섰다는 점이 한 가지 이유이고, 그가 평생에 걸쳐 反전체주의와 개인 자유의 옹호에 대한 철학을 펼쳤다는 점이 두 번째 이유이다. 원래는 칼 포퍼의 대표작인 <열린사회의 그 적들>을 읽을 생각이었는데, 그 제법 어렵다는 책을 읽기로 결정하기 전에 그에 대한 큰 그림을 우선 알아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 책을 먼저 펼치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책이었던 것 같다. 어려운 내용일 수도 있는 것들을 쉽게 풀어쓴 것 같다. 

190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태인 칼 포퍼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고 사유하는 것을 즐기는 총명한 아이였다고 한다. 그의 자서전에서 이르기를, 8살 때 이미 '본질의 무한함을 숙고' 했으며, 12-13살 무렵에 '다윈이 미제로 남긴 생명의 기원이라는 문제'와 '생명은 단순한 화학적 프로세스인가?'를 두고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이렇듯 사유를 어려서부터 시작했으니, 학교에서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들여야 했던 당시의 주입식 교육이 포퍼에게는 지루함의 극한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또 커가면서 1차 세계대전의 개전, 오스트리아 및 유럽 국가 내부적인 균열, 반유대주의 등 사회적 혼란하에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생각하여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17살이 될 무렵 마르크스주의의 허황된 꿈을 깨닫고 마르크스 주의를 버린다. 그는 "강령의 독단적인 특성과 믿기 어려울 정도의 지적 오만을 깨달았다.",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독단적인 도그마(dogma)를 위해, 또 결국에는 실현되지 않을지도 모를 하나의 꿈을 위해 남들에게 목숨을 걸라고 말하는 그런 유의 지식을 홀로 전유했다고 여기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읽고 생각할 줄 아는 지식인에게는 특히 심란한 일이었다. 그런 덫에 빠져들었다는 것은 몸서리치게 끔찍한 일이었다.", "노동 계급을 이끌어 갈 미래의 지도자는 당연히 자신들이라고 여기는 몇몇 마르크스주의자 친구와 동료 학생들의 지적인 무례함에 대해서는 특히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라고 하였다. 아직도 주변에 혁명이니 뭐니 하는데서 깨어나지 못하는 나이만 먹은 철부지들이 많은데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등의 전체주의적 특징과 잔혹성을 어린 시절부터 깨달은 그의 통찰력이 놀랍다. 그는 그의 인생에 걸쳐 공산주의자 -> 사회주의자 -> 보수주의자로서 변해 간 것으로 평가된다. 

내가 이 책을 읽을때의 목적대로, 좀더 집중해서 읽은 것은 그의 사상에 대해 서두에 언급한 2가지였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반박, 그리고 反전체주의. 

우선 비트겐슈타인에 맞선 부분부터 써보자. 그러기 위해서 우선 비트겐슈타인과 그를 따르는 비엔나학파의 주장부터 정리해보자.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 '철학은 '진리의 추구'라기 보다는 '의미의 추구'였다. 그는 이 세계에 대한 명제가 '관찰을 통해 검증'할 수 있고나 '자기 완결적(분석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못한 명제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즉, 형이상학적인 명제와 같은 것은 그의 철학에 의해 의미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형이상학적인 명제 뿐만 아니라, 미학, 윤리학, 정치학, 신학 등 검증 실험에 실패한 모든 명제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은 고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와 같은 명제는,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는 분석적이지도 않고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에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접근법을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이라고 부른다. 

포퍼는 이러한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그를 따르던 논리실증주의자, 비엔나학파의 이런 철학을 거부하고 반대했다. 이들이 형이상학, 미학, 윤리학을 비롯한 각종 철학 분야가 의미 없는 군더더기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물리학과 같은 '과학'을 형이상학을 구분 지으며 형이상학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돌리려고 하였다. 포퍼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강하게 비판적이었다. 주된 이유는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었던 과학적 발견의 대부분이 형이상학적 명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때로는 모호한 이론적 사고 속에서 형이상학적 신념이 없었다면...... 과학 연구는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에게 형이상학은 절대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과학 발견의 중요한 요소였다. 그는 논리실증주의자들이 "과학적 이론까지 무의미한 형이상학 이론 취급을 하며 쓰레기 더미 위로 내던지고 있는 상황을 깨닫지 못했다"라고 봤다. 

포퍼는 또 실재적인 철학 문제가 존재하며, 그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철학자의 역할이라고 여겼다. 또한 철학자는 의미가 아니라 진리를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생각들은 문제 해결에 대한 방법론적인 부분으로 넘어가게 된다. 포퍼는 <탐구의 논리(1934)>라는 논문을 통해 과학을 귀납적 과정이 아닌 연역적 과정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퍼는 귀납법에는 오류가 있다고 여겼다. 쉽게 말하면 '블랙 스완'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세상에 불확실성은 항상 존재하며 귀납법을 써서 어떤 일반적인 법칙을 만들기보다는, 연역법을 써서 어떤 가설에 대한 반증을 통하여 이론을 튼튼하게 키워나가는 것이 올바른 접근이라고 여겼다. 어떤 이론이 끊임없는 챌린지에 오랫동안 버텨냈다면 (여전히 가설임에도) 여전히 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과학적 발견은 시행착오의 과정을 통해 이론을 구축하는 반증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포퍼의 철학적 기반이 이러하니 그가 논쟁에 뛰어드는 것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논쟁 자체가 그에게는 건전한 지식 진화의 길인 것이다. 

그의 연역법은 현대에서는 나심 탈레브가 이어 받아서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도 그의 주장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누가 뭐래도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논박의 여지가 없다. 

反전체주의에 대한 부분을 또 정리해보자. 이 부분은 그가 2차 대전 당시 '전쟁하듯 쓴 책'이자 대표작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서 많이 소개가 되었는데, 그는 이 책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철학자(플라톤, 헤겔, 마르크스)들을 당시 파시즘과 나치즘의 본령인 독재와 악을 향한 길을 닦았다고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비판했다. 그것이 당시 이 세 철학자를 숭배하는 서구학자들에게는 큰 불만일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포퍼가 비판하는 철학자들의 사상은 '역사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사주의자들은 회의 특성과 형태를 결정짓는 발전의 '역사적 법칙'을 밝히는 방식과 목표로 사회를 연구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내재된 역사의 법칙을 참고해 향후 사회의 발전상을 유추하려고 했다. 그들은 여기서 또 그치지 않고 사회개혁을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준비하거나 사회가 전과 다른 악화된 형세로 나아가지 않게 막는 도구로 보았다. 포퍼는 바로 이 점을 반대했다. 역사주의자들의 정치학을 근본적으로 유토피아적이며 엘리트주의적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역사주의자들의 이 패턴은 포퍼가 일관되게 반대했던 귀납법이었다.) 유명한 좌익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 보면 '사회 심리학'이라는게 나와서 미래를 기가 막히게 예측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딱 그런게 역사주의인 것이다. 

생각을 해보자. 우리가 취한 행동이나 결정이 초래할 결과를 역사주의자들이 믿는 식대로 확실히 예측을 할 수 있을까? 이성은 오류를 범할 수 없을까? 우리는 우리가 어떤 특정한 미래 사회에 성공적으로 다다르기 위한 계획을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문제를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내린 결정이 초래할 실질적이고 장기적인 결과는, "한정된 우리의 경험 탓에 계측하기가 어렵다.". 역사주의는 "사회 전반을 대상으로 이상적인 계획을 세우자."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그런 야심 찬 주장을 하기에는 사실에 근거한 지식 같은 것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포퍼는 바로 이런 점들에 지적하며 역사주의자들의 오만에 치를 떨었던 것이다. 이런 완전치 못한 지식을 가지고 사회를 설계하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바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치즘이 그러지 않았는가? 파시즘이 그러지 않았는가? 공산주의가 그러지 않았는가? 공산주의 국가를 만든다고 정치인들이 죽인 사람은 1억명이 넘는다. 중국에서 7500만명, 구소련에서 2000만명 등등. 

그가 보기에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 국가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 공산주의와 같은 현대판 전체주의 국가와 매우 닮아 있었다. 헤겔의 역사이론은, 민족주의의 부상과 전체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국가의 여정에 관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분명 의도적으로 어려운 말을 잔뜩 나여해 두루뭉술하게 쓴 것으로 보았다. 그는 또 마르크스는 인류가 역사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여지를 두지 않다시피 한 것으로 보았다. 나아가 역사발전의 법칙을 인류의 손에서 완전히 빼앗음으로써 헤겔의 이상주의를 전복하고, 대신 보다 광범위하고 비인격적인 경제력에서 역사발전의 법칙을 찾았다고 하였다. 이러한 문제의 지적과 함께 마르크스가 사회과학, 정치학 연구에 역사주의의 악마를 들여놓아 사회과학, 정치학에 대한, 그리고 열린사회를 추구함에 있어서도 심각한 위협이라고 보았다.

그가 말한 '열린 사회'라는 개념은 결국 이런데서 출발한다. 오류 없는 진리가 없다면, 정치 조직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공공 정책이 이행되야 하는지, 정치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개인 스스로가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른바 '소극적 공리주의(negative utilitarianism)' 관점을 동조하며, '오류 제거'에 초점을 맞췄다. 사회, 정치 제도의 의도는 개개의 통치자나 엘리트에게 이상적인 선을 추구할 힘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이들이 "너무 과한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또, 때로는 국가가 개인의 사회, 정치 생활에 간섭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국가의 간섭은 다음과 같은 제도, 즉 개인과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거나 축적된 지식, 경험, 비판의 결과로 점진적으로 자체적인 성장을 이룬 제도에 의한 간섭일 때만 정당화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런 사회가 그가 그리는 '열린 사회'인 것이다. 포퍼는 또 '민주주의' 제도를 강하게 옹호했다. 포퍼는 여러 칼럼을 통해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통상 타락하기 쉬운 '민주주의'와는 좀 다르다. 그는 포퓰리즘을 통한 민주주의의 타락을 무척 경계한 사람이다.

포퍼의 철학들은 좌우로 막론하고 동조하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의 철학을 강력한 논거들을 갖고 잘근잘근 씹어댔으니 적이 많았을 수 밖에. 연역법은 논쟁이 필수적이다. 그의 방법론 자체가 논쟁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를 동조하던 이들 중 좌파에서는 버트랜드 러셀과 같은 이가 유명하고, 우파에서는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사람이 유명하다. 포퍼의 철학의 반전체주의적 요소는 자유주의 철학의 기반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포퍼 본인은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운 정치 사상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것 같다. 그는 이를 정확히 말한 적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자유주의 경제학, 철학 거성 하이에크와는 개인적으로 무척 두터운 친분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포퍼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라면 꼭 읽어볼만한 책인 것 같다. 요약이 아주 잘 되어 있고 포퍼 철학에 더 관심을 가질지에 대해 판단할 좋은 책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포퍼의 책에서 그대로 인용해온 구절들이 풍부하게 소개되는 점도 좋았다. 포퍼에 대해서 감이 생겼다. 한국에는 그에 대한 책들이 그렇게 많이 나와 있지 않은 것 같아 좀 아쉽기는 하지만 그의 대표작인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나와 있으니 나는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