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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다치바나 다카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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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다치바나 다카시

Dharmaniac 2016. 1. 7. 11:45




올해 첫 책으로 무엇을 읽을까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요즘 책읽기에 대해서 회의가 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독서에 대한 목적성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다보니 쓸데없이 권수에만 집착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해력이나 기억력도 점점 퇴화하는 것 같아 그런 회의가 들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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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시작한 것이 과거 책 복기였습니다(이것도 작년에 하다 만 것입니다만…). 어떤 방식의 복기냐 하면 예전에 읽었던 책 목록에서 한권씩 차례대로 다시 끄집어 와서 당시에 줄을 그었던 부분들을 워드에 타이핑해서 옮기는 식의 복기였습니다. 다시 소리내서 그 부분들을 읽으며 타자를 쳐보는 거죠. 그러다가 12월말일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 ‘우주로부터의 귀환’, ‘에게 – 영원회귀의 바다’라는 걸출한 책들을 다시 복기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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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라고 할 것 같으면 일본의 유명한 ‘탐사 저널리스트’이고, 사실 더 유명한 것은 그의 엄청난 ‘독서력’이라고 할 수 있죠. 그는 일본의 움베르토 에코라고도 종종 불리지만, 둘이 나이 차도 얼마 안나니 움베르토 에코를 이탈리아의 다치바나라고 불러도 별 무리 없는…암튼 좀 비슷한 면들은 있습니다. 그가 탐사 저널리스트로서 커리어를 갖게 된 것도 사실 그의 그 엄청난 독서력이 기반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 그는 한 주제를 쓰기 위해서 엄청난 독서를 합니다. 그래서 전문가 뺨치는 지식과 식견을 단기간에 갖춘 후에 필요한 인터뷰와 외부 조사를 시작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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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탐사 저널리스트로서의 역량보다 정말 배우고 싶은 것은 그의 ‘독서력’입니다. 책 읽는 시간이 부족하여 책을 읽고 싶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동경대 철학과로 입학한 그, 장서가 늘어나는 바람에 살고 있던 바닥이 무너져서 여러번 이사한 그, 결국 그 장서들을 감당을 못해 빌딩 하나를 구입하고 건물 전체 디자인을 고양이로 그려놓고 그 안에 자신의 장서 4만여권을 채워넣은 그(그것도 모자라 나중에 빌딩 주변에 방을 몇개 더 잡았다고 합니다).. 그의 독서력은 정말 배우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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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퇴사시 썼던 [퇴사의 변]을 한번 봅시다.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점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을 읽어치우지 못하게 되었다. 이윽고 책상 위에 다 놓을 수 없게 되자 책상 옆에 쌓아 두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산이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마침내 새로운 서가를 구입하여 꽂아 두어야 할 상황을 맞고 말았다. 읽고 싶은데 읽지는 못하는 책들이 책장 가득히 꽂혀 있는 것을 바라보기만 한다는 것은 심한 고통이었다.”

이 구절만으로도 그의 독서에 대한 열정을 충분히 느끼고도 남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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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올해 첫 책으로 읽기로 선택한 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이라는 책은 그의 독서 인생의 정수가 담겨 있는 책입니다. 아까로 돌아가서, 다치바나의 다른 두 권 책을 복기하다가 이 책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2007년에 한번 읽었던 책이고, 그 때 제게 책읽기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해줬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의 요즘 책읽기에 대한 회의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이상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올해의 첫 책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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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을 간단히 소개해보겠습니다. 이 책은 두 파트로 나뉩니다. 첫 파트는 한 기자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고양이 빌딩(다치바나의 개인 서재빌딩)을 같이 돌아다니면서 온갖 책들에 대한 다치바나의 회상을 들어봅니다. 책과 함께한 그의 인생 자서전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두번째 파트는 그가 ‘01.3 – ‘06.11 사이에 연재했던 독서일기로 그가 당시 읽은 책들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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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파트에서 그는 자신이 <문예춘추>로 입사하기 전에는 거의 소설(픽션)만 읽었고, 문필세계에 있어 논픽션을 격하했었노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그 이후 그러나 픽션은 버리고 논픽션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그는 리얼한 세계를 더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픽션은 아무리 해봐야 결국 작가의 상상력과 언어의 힘만으로 구축된 세상인지라 한계가 있어 그에게는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지금도 그는 픽션은 시간낭비라면서 읽지 않는다고 하네요. (저는 좀 생각이 다르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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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결국 논픽션 위주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철학/역사/종교/심리, 그리고 자연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 분야로의 독서를 많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분야를 알기 위해서 개론/소사전과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관련 책들을 수십권씩 사갖고 와서 읽고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웬만한 전문가 못지 않은, 적어도 그 분야의 대가와 인터뷰를 아주 다이나믹하게 수시간에 걸쳐서 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해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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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첫 파트에서 돌아다니며 집어다가 소개하는 책들을 보면 정말 다양합니다. 베르자예프, 비코, 비트겐슈타인, 성서와 성서 관련 서적들, 중국 철학, 이슬람 문화/역사/철학, 일본 근현대사, 온갖 과학자…그의 독서는 가히 하나의 지식 보고라고 느껴집니다. 어찌보면 이 첫 파트는 한 편의 무협지와도 같습니다. “어떤 상대를 만났고, 그를 만나 대결하여, 이기고(정복하고), 내 것으로 만들었다. 어떤 상대는 별 상대할 가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나의 무공실력은 날로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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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파트인 그의 독서일기는 서평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쓰는 것처럼 이런 긴 서평이 아니라 아주 그 책의 정수만 딱 캐치해서 아주 콤팩트하게 보여주고 자신의 생각을 쓴..정말 배우고 싶은 서평 솜씨입니다. (저 이거 좀 짧게 쓰고 싶었는데…자꾸 길어지네요.). 이 파트를 읽어보시면 아마 다양한 분야에서 읽고 싶은 책들이 몰려나올 겁니다. 저도 이 책 1, 2 파트 보면서 목록이 확 늘어났네요.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출판 안된 책들도 많은게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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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읽고 싶은 책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바로 그 사실 자체가 지적인 인간에서 살아 있음의 증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일 그 욕망이 사라진다면 그 사람은 이미 지적으로 죽었다고 해도 좋습니다.”. 이 책의 52페이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독서 대가의 이 구절을 줄 쳐놓고 다시 읽음으로써 제가 최근 느꼈던 회의는 어느 정도 극복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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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독서는 권수에 구애받지 않고 차근차근 읽고 싶은 책들을 찾아서 (좀 하드코어하더라도..) 읽을 생각입니다. 서평도 좀 차근차근 써볼 생각이구요. 이 책은 독서를 취미로 하는 분이라면 읽고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책 같습니다. 배울 점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습니다. 다치바나의 다른 책도 추천하자면, ‘사색기행’, ‘에게 – 영원회귀의 바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우주로부터의 귀환’..다 너무 좋습니다. 저는 이 분의 책 ‘천황과 도쿄대(상/하)’,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한다’를 올해 읽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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