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just here

[책] "노예의 길"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본문

책책책

[책] "노예의 길"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Dharmaniac 2016. 1. 13. 11:31

원제: The Road to Serfdom 저자: Friedrich Hayek


저 유명한 케인즈와 맞수였던 자유주의 경제학자의 거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에 대해서는 크게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 이 책은 하이에크가 1944년, 2차 대전 기간 중,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 변화가 전체주의의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여 경종을 울리고자 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 나치즘, 파시즘의 사상적 발원은 모두 전체주의라는 것, 전체주의라는 스펙트럼 내에서 다른 극단으로 간 것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주의로 가는 흐름 자체에 대해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체주의의 대치되는 개념으로 바로 하이에크가 가장 숭고하고 소중한 개념을 짚은 개인의 자유이다. 자유는 어떠한 이유로든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설파한다. 우선 혹시라도 있을 오해의 방지를 위해 개인의 자유에 대한 하이에크가 내리는 정의를 보자. “인간으로서의 개별 인간에 대한 존중, 그 자신의 견해와 선호를 그 자신의 영역에서는 (비록 그 영역이 아무리 좁게 한정된다 할지라도) 궁극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것과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과 취향을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신념” 물론 모든 타인도 자신과 같은 이러한 권리를 지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뜻대로 무언가가 되지 않을 때 우리 자신 말고는 모든 것을 비난하게 되는 습성이 있고, 자신이 그 잘못의 원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다. 그래서 외부, 즉 사회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하고 그 사회를 개조/통제함으로써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자유주의는 점진적이고 천천히 해결해 나가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그것을 장애물로 인식하기 쉬운 것이다. 또한 통제를 통해서는 즉각적인 결과를 얻기는 쉽다. 어떤 사람들에게 확실히 이득이 된다. 다만 그 문제 하나를 통제를 통해 해결함으로써 다른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 쉽다. 사회 통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당연히 야심이 커진다는 것이다.또한 대중도 그 성공으로 인해 예전 같으면 인내했을 문제들을 인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조급증, 거기에 특권을 방어하기 위한 자유주의에 대한 공격, 물질적 진보의 확대를 위한 야망 등이 점점 진화해 가며 거대한 특권, 권력을 지닌 집단, 사회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조금도 각론으로 들어가보자.


사회주의는 유토피아를 약속하며 진보주의자들을 교리가 되었으며 사회주의는 자유를 마치 지켜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새로운 자유’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꾸며 부의 동등분배를 이뤄주겠다고 한다. ‘새로운 자유’는, 인간이 진정이 자유로워지기 이전에 ‘물리적 필요의 압제’를 분쇄하고 ‘경제체제의 제약들’이 느슨해져야 된다는 것이다. 즉 권력과 부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것이다. 부의 동등분배를 해주겠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과연 이런 것을 누가 어떻게 해줄 수 있겠는가?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그 누군가’가 해주려면 그 누군가가 권력을 쥐게 된다. 그게 가능이나 한 것인가? 결국 자유의 길을 찾아가는 듯 하고 따르지만 예속의 길로 가는 첩경인 것이다.


사회주의는 또한 계획경제를 주장하며 경제 전체를 어떤 공공의 선,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조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그 계획경제가 다른 수단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계획경제의 목표가 아니라 그 수단 그리고 방법이 초래할 결과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일단 우리가 생각하는 계획과 사회주의의 계획은 다른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에 대한 합리적 고민에서의 계획이지만, 사회주의는 중앙 계획, 통제를 통해 “무엇이 최선이다”에 대해 자기들이 방법을 자신들이 짜주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커다란 힘이며 권력이며 강제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것을 국가가 보유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경쟁에서 이기는 자는 착취하는 자로 치부되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성공하더라도 경쟁 자체를 죄악시하는 풍토를 조성할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경쟁에 대한 적개심으로 경쟁을 파괴하고, 자본가/노동자와 결합된 독점행위를 초래하고, 급기야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선동할 것이다. 경쟁은 사라지고 다시 경쟁 체제를 복귀하려면 국가가 다시 개입해서 효과적으로 만든다는 미명하에 통제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계획 열광자들은 사실 이러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루고 싶은 이상이 있는데, 인생은 짧기 때문에 그 안에 계획/목표를 성취하려면 오직 ‘중앙 계획/통제’만이 가능한 수단일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계획’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자기의 가치관이 보편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사회목적이라는 것을 뜯어보자. 모든 개인은 다 다르다. 개인의 목적을 모두 모아서 하나의 사회의 목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공통되는 가치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전체의 필요들 가운데 일부분 이상 포함하기는 어렵다. 어떠한 조직에서도 제한된(합의된) 영역 외에서는 어떤 최고의 선 따위는 있을 수가 없다. 그 영역 밖에 나가면 더 이상 최고의 선이 아닌 것이다. 국가가 자신의 밖을 통제한다는 것이 결국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법을 통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법의 지배라는 것은 사실 정부가 모든 행동에서 미리 고정되고 선포된 규칙에 의해 제약하여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어떤 강제력이 있게는가 라는 것을 예측하고, 그 예측을 함으로써 자기 스스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비유를 하자면 도로를 만들고 교통규칙을 제정하는 것이다.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는 각 개인이 정할 일이다. 그러나 집단주의에서의 법은 법의 집행을 각론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지시성이 된다. 즉 도로에서 개인에게 어디로 가라고 까지 명령을 하는 격이 되는 것이다. 자유의 침해다.


이 외에도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들이 소개가 된다. 경제적 통제, 통제하는 사람/통제 당하는 사람,무차별 보장,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히틀러 같은 사악한 인간들이 권력을 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 진리의 종말 등 다양한 챕터가 있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전체주의를 따르다 보면 국가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게 되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독재의 길, 나치즘/스탈린 공산주의/파시즘 식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보여준다. 책 위에 줄 그어 놓고 메모하던 것들을 갑자기 요약을 하고 있어서 일단 여기서 멈출 필요가 있겠다.


이 책에서 배운 점은 참 많다. 우선 개인적으로 내가 얼마나 자유를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빠지게 될 수 있는 집단주의의 함정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 이러한 하이에크의 통찰이 그 당시 뿐 아니라 어느 세대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점들. 사실 많은 내용들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포퓰리즘이나 좌클릭 등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 역시 강력한 견제의 힘이기 때문에 팽팽하게 억제를 한다면 나치즘과 같은 극단으로 흘러가지는 않으리라 라고 생각해본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