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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혼의 자서전(상/하)" - 니코스 카잔차키스

Dharmaniac 2016. 1. 13. 10:49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열린책들(2009)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이다.


이 책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의 내면적인 고뇌와 투쟁들을 적은 그의 자서전이다. 어린 시절 전쟁 통에 죽음을 본 다음부터 그의 내면에서의 투쟁의 여정들이 시작된다. 무엇을 믿고 따라서 끝까지 갔더니 심연을 만나고, 또다시 다른 쪽으로 가서 또 심연을 만나고. 그의 투쟁은 눈물겹다. 예수님, 붓다, 니체 등의 신발을 신고 그들의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그 엄청난 인간적 측면에서의 고통들을 직접 느껴보려 하기도 하고, 현실에서는 러시아로 가서 이상을 꿈꾸며 레닌을 찬양하기도 했다가, 조르바를 만나 진정한 자유에 대한 동경을 하게 되기도 하고…


그의 내면의 투쟁의 묘사들을 읽다 보면 마치 구도하는 자가 명상을 하듯이 그 내면 의식의 흐름, 그러나 이성, 영적인 부분까지 함께하는 한편으로는 무척 복잡하기도 하고, 때로는 빛이 보이기도 하다가, 끊임없는 나락이 보이기도 하다가, 쓰러져버릴 것만 같이 보인다. 육체는 영혼에 잠식되어 간다. 그러나 육체 또한 영혼에게 반격하기도 한다…그의 그러한 영혼과 육체간의 싸움은 계속된다.


그는 말한다. 그만큼 인간은 작은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구원’이나 ‘자유’를 넘어서 초인이 되는 것은 엄청난 고통에 따르고, 추구하는 할 수 있되,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계속해서 ‘오르는 것’, 정상에는 이를 수 없되, 그 과정 자체가 사람이 갖게 되는 숙명이 아닐까라며 계속되는 을 이야기해준다. 니코스는 한때 니체에 탐닉하여 거의 육체적인 폐인이 되다시피 하지만 또 다시 붓다를 마주하며 분연히 일어난다.


그의 초현실적인, 영적인 느낌의 묘사들을 너무너무 아름답게 하여 읽으면서 감탄을 자아낸다. 화려해서라기보다는 묘사와 비유의 단어 하나하나에 영적 에너지가 느껴지며 마음을 울려준다. 이 책은 사실 완성되었던 책은 아니라고 한다. 니코스가 수정을 더 하고 싶었지만, 타개하는 바람에 이대로 출판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어떻게 보면 인류의, 내면속 투쟁을 담은 책이다. 그 투쟁은 끝날 수가 없다. 책이 마무리가 되었다고 한들, 그 투쟁은 끝났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덮고 나도 나와의 투쟁을 이어나간다. 언덕을 묵묵히 짐을 지고 올라간다. 쓰러지더라도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날 것이다.


밑줄 그었던 구절 몇 개)


1. 어떤 확실성에 이를 때마다 항상 나에게는 자신감과 휴식이 곧 끝나버린다. 새로운 불안과 회의가 재빨리 확실성에서 파생되고, 나는 마지못해 과거의 확실성으로부터 나 자신을 해방시키고 새로운 확실성을 찾아내어, 결국은 새로운 확실성이 성숙하고 다시금 불확실성으로 바뀔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들은 불확실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불확실성은 새로운 확실성의 어머니이다.


2. 네가 뜻하는 바는 헛되다고 그것은 자꾸만 내 마음에게 말했다. 네가 탐하는 세계, 굶주림과 추위와 불의에 시달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세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영원히 존재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다 – 비록 그것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내가 존재하기를 원하므로 존재할 것이다.


나는 심장이 고동칠 때마다 그것이 존재하기를 욕망한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믿고, 그렇게 믿음으로써 그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들은 충분한 힘을 들여 욕망하지 않았던 모든 대상을 라 일컫는다. 마음의 응답을 듣고 나는 혼란 속으로 빠져 들었다. 만일 그 말이 모두 진실이라면 세상의 모든 불의와 치욕에 대해 인간이 져야 할 책임은 얼마나 엄청난가!


3. 나는 불가능하고 헛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객관적인 삶의 목적을 찾아내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내가 내 자유 의지에 따라 정신적이고 지적인 필요성에 입각해서 삶에 어떤 목적을 부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졌다. 목적이 참되냐 아니냐는 그때 나에게는 별로 큰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일은 내 자아와 부합하는 목적을 발견하고(어떻게 해서든지 만들어 내고), 그 목적을 따름으로써 내 특유의 욕망과 능력을 최대한으로 풀어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마침내 나는 우주와 총체와 조화를 이루며 함께 일하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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